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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識/상식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는?

 소리가 안나는 영화를 보면 어떨까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재미없는 영화가 될 텐데요.

현재 우리나라는 영화관련 상도 많이 받을 정도로 영화산업이 발전했는데요. 우리나라도 소리가 없는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는 소리가 나는 영화 즉, 발성영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는?

발성영화(發聲映畫)란?

발성영화(發聲映畫)는 말 그대로 소리가 있는 영화로, 영상과 음성, 음악 등이 함께 나오는 영화를 말합니다. 

영화에서 정식 명칭은 '토키(Talkie)'지만 현재는 모든 영화가 발성영화로 제작되어 이 '토키'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토키'의 시초는1889년 에디슨이 납관식 축음기를 발명하고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후 1910년 프랑스의 로스트가 필름식 축음기를 발명하면서 더 활발해졌는데요. 이 필름식 축음기의 '필름식'은 현재도 영화 제작에 사용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이런 축음기의 발전은 곧 발성영화의 제작으로 이어졌는데요. 1927년 미국에서 <재즈싱어>라는 최초의 발성 영화가 나오게 됐고, '파트토키'(부분적 음성 영화), '사운드판'(음악과 음향만 넣은 영화) 영화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30년 무렵에는 발성영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 

세계적으로 발성영화 시대에 접어든 1930년대에 우리나라 또한 발성영화 제작이 이뤄졌습니다. 그 중에서 '이필우', '이명우' 형제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발성영화를 접한 후 우리나라의 발성영화 제작을 위해 노력했는데요.

 두 형제는 많은 노력과 연구를 통해 'PKR발성장치'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는 곧 영화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촬영기사이기도 한 이필우가 촬영과 음향을, 이명우가 감독과 연출을 맡아 제작에 들어가 1935년 10월 4일 서울 단성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가 개봉했는데요.

 

 그 작품은 바로 '춘향전'이었습니다.

 

 춘향전은 당시 거금인 2,400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으며, 입장료는 1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1원을 넘긴 작품인데요. 당시 무성영화 입장료가 20~40전인 것을 봤을 때 2배 이상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상영되던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단성사 춘향전 대기 줄 사진
춘향전 대기 줄 ⓒ동아일보

춘향전

춘향전은 모두 잘 알듯이 판소리 열 두 마당 중 현재 전해오는 다섯 마당 중 하나로, 작자미상의 이야기로 양반의 아들 이몽룡과, 기생의 딸 성춘향연애소설입니다

 

 판소리로, 구전으로 전해오다 보니 많은 변형이 있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요. 어떤 판본을 보고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춘향전은 많은 변형이 있었고, 영화사에서도 가장 많은 리메이크(18회)를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필우, 이명우 형제는 많은 춘향전 중에서 이광수의 <일설 춘향전>을 원본으로 삼아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필우, 이명우 형제가 제작한 춘향전은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영화 춘향전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로 영화화된 춘향전은 서울에서 일본이 대상 영화관을 운영하던 '히야가와'가 만든 것으로, 연극 사이에 삽입되는 '연쇄극'형식의 영화였습니다. 

 이 작품을 일본인이 제작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각본을 가지고, 우리나라 배우들이 연기를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춘향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가 아닐 뻔했다?

 <춘향전>을 제작한 이필우 이명우 형제는 사실 춘향전이 아닌 다른 작품을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로 만들 뻔했습니다.

 'PKR발성장치'를 개발한 형제는 발성영화 제작에 나섰는데요. 그 작품은 1931년 촬영한 <말 못 할 사정>입니다.

실제 이 작품은 제작을 시작하며 2/3 가량 촬영을 했는데요. 중간에 막대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한 제작사가 제작을 중단하며 촬영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형제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제작에 나섰고, 결국 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만들어졌고, 이후 우리나라는 발성영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한글 문서 한 페이지에는 몇 글자가 들어갈까

최초의 한글소설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사람은 왜 간지럼을 탈까?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잘 보관돼서 전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에 오류가 있거나 오타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