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사도>, <왕의 남자>와 같은 영화나 <슈룹>, <이산>,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는 모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을 보다 보면 왕이나 왕자에게 '전하', '전하', '폐하'와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왕인데 다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왕을 부르던 호칭인 '전하'와 '저하', '폐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왕을 부를 때는?
우리나라는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스스로 황제가 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까지 왕이 통치하는 '전제군주제' 국가였습니다.(물론 고종 다음으로 황제가 된 '순종'이 마지막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불리곤 합니다)
'전제군주제'는 군주(왕)를 국가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왕(군주)이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왕은 말 한마디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의 이름을 백성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피휘(避諱)'라는 관습만 봐도 조선에서 왕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을 직접 만나는 신하들은 왕과 왕족들을 부를 때 호칭에 신경을 썼을 텐데요. 그 호칭이 바로 '전하'와 '저하', '폐하'와 같은 것인데요. 이 호칭들은 어떤 의미와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전하(殿下)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호칭은 이 '전하'일 텐데요. 사극을 보다 보면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대사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하(殿下)'는 '전각'과 '궁궐'을 뜻하는 '殿(전각 전)'과 '下(아래 하)'를 합쳐 만든 단어입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전각(궁궐) 아래에서 엎드려 아뢴다'를 의미하며, 황태자(황제의 후계자)와 '제후(諸侯)'*를 칭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전각(궁궐)'아래라는 의미는 또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궁궐의 계단 아래에서 엎드려 아뢴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에서 보면 왕과 신하들이 정사(政事)를 하는 '궁궐 내부에서 엎드려 아뢴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제후(諸侯): 봉건 시대에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지던 사람.
저하(邸下)
'저하(邸下)'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왕의 후계자)' 또는 '왕세손(세자의 아들)'를 칭하는 호칭입니다. '邸(집 저)'와 '下(아래 하)'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왕의 호칭인 '전하(殿下)'의 '전(殿)'이 큰 집을 의미하기에 그냥 집을 의미하는 '저(邸)'를 붙여 사용해, '아래에서 뵈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저하(邸下)'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지 않고 고려와 조선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로, '세자 저하'와 같이 사용됐습니다.
폐하(陛下)
'폐하(陛下)'는 '대궐', '섬돌'을 의미하는 '陛(대궐 섬돌 폐)'와 '下(아래 하)'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섬돌(돌계단) 아래에서 올려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황제'를 칭하는 말입니다.
주로 중국에서 왕을 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며, 우리나라 또한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폐하'의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폐하'는 '전하'와 마찬가지로'뜰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왜 굳이 두 단어를 나눠서 사용했을까요?
폐하(陛下)와 전하(殿下)
중세 한국어에서는 이 '폐하'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하'와 같은 뜻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폐하'가 '전하'보다 높은 격을 가진 단어입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폐하'는 황제 및 국왕을 칭하고, '전하'는 '제후(諸侯)'를 칭하는 단어이며, '황태자(황제의 후계자)'를 칭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조선의 왕들은 국왕이면서 더 낮은 격인 '전하'를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 고려 '원 간섭기'에 원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제후국의 예법을 사용하며 '폐하'가 아닌 '전하'를 사용했었습니다.
이후 공민왕이 '폐하'의 호칭을 부활시켰지만 얼마 못 가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고려의 '명나라'와의 사대관계가 조선까지 이어지며 조선은 명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지 못해 '전하'의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1984년 갑오개혁을 거쳐 1895년 '주상 전하'는 '대군주 폐하'로, '왕세자 저하'는 '왕태자 전하'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정식으로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호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기타 호칭
주상(主上)
주상 전하의 '주상(主上)'은 마찬가지로 왕을 칭하는 단어이지만 백성들은 사용할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전하(殿下)'가 '왕보다 낮은 사람들이 왕을 부르는 호칭'이라면 '주상(主上)'은 '왕보다 높은 사람들이 왕을 부르는 호칭'인데요. 왕위를 물려준 '상왕(上王)'이나 '대왕대비(大王大妃)', '왕대비(王大妃)', '대비(大妃)'와 같은 어른들이 왕을 부를 때 사용한 호칭입니다.
합하(閤下)
'합하(閤下)'는 정일품(좌의정, 우의정)의 관료를 부르는 호칭이며, 왕세손이나 대원군을 부르는 호칭으로도 사용됐습니다.
각하(閣下)
'전각 아래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각하(閣下)'는 고급 관료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정 2품 이상의 고위관료를 칭할 때 사용됐으며,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장군들을 부르는 호칭으로도 사용됐습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으로도 사용됐는데요. 이후 '각하'라는 칭호가 권위적이라는 인상이 강해 점점 금지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는 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 부르게 되며 사라지게 됐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왕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전하'라는 말이 그냥 왕을 칭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호칭이 정해지게 된 이유와 다른 호칭들을 알게 됐는데요. 앞으로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볼 때 왕의 호칭을 생각하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