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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識/역사

하루아침에 왕이 된 농부

1849. 평화로운 강화도에 한 무리의 행렬이 나타났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농사를 짓던 농부 한 명은 그 행렬을 보고 

 

자신의 형과 함께 산 속으로 도망을 쳤다. 

 

그의 큰 형과 할아버지는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했고 그는 유배 중이었다. 

 

그는 그의 형과 할아버지처럼 잡혀가 처형당할 것이란 생각에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행렬을 피해 계속해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의 형이 다리를 접질렀고, 결국 그는 형과 함께 붙잡히게 된다. 

 

그는 가마에 실려 서울 창덕궁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 농부의 이름은 '이원범(李元範)'이었고,

 

이원범(李元範)은 끌려간 그곳에서 조선의 25대 왕 철종(哲宗)이 되었다.

 

철종, 농부에서 왕으로
철종( 1831 ~ 1863)  조선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출처 wikipedia)

조선의 25대 왕 '철종(哲宗)'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즉위하기 전에는 강화도에 살면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지어진 별명인데요.

 

'이원범'이 사실 강화도에서 생활한 것은 5년 정도였고, 게다가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철종' 즉위 당시가 19이었으니 인생의 1/4정도만 강화도 생활을 한 것인데요.

 

아무래도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이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원범은 어떻게 강화도로 가게 되었을까요?

 

철종의 집
강화도령 시절 철종의 집 (용흥궁) (출처 wikipedia)

'이원범'의 아버지인 '이광(李㼅)'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 '은언군'의 아들입니다.

 

'이원범'의 할아버지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은 

 

1786년 역모 혐의를 받고 순조 때 사사(賜死) 되었습니다.

 *사사(賜死)죽일 죄인이 대우받아 임금이 내린 독약으로 스스로 죽다.

 

이광은 아버지의 역모 혐의로 모든 식구가 교동도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왕가에 직계혈통이 부족해지자 왕실에서는 '이광'을 다시 한성으로 부르게 되는데요.

 

여기서 '이광'은 셋째인 이원범'을 낳게 됩니다.

 

그렇게 한성에서 태어난 '이원범'은 왕가의 종친 신분으로 편안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원범이 14살이 되던 해인 1844년 일이 발생합니다.

 

무인 출신인 민진용이 '이원범'의 큰 형인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미게 됩니다.

 

이에 '이원경'은 처형당하고 '이원범'은 작은형인 '이경응'강화도로 유배됩니다.

 

강화도로 유배된 이원범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무리에 의해 한성으로 끌려간 그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농사 짓던 왕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이원범'이 갑자기 '철종'이 된 것은 정통성의 문제 때문인데요.

 

'철종'의 선대왕인 '헌종'이 후사 없이 23세라는 이른 나이게 갑작스럽게 승하하게 되자,

 

조선 왕가에서 '정조'의 직계자손 혈통이 끊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에 왕가는 정통성을 가진 왕족을 찾기 위해 영조의 후손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 이광의 자손들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이원범'은 역모를 꾸민 '이원경'과 몸이 안 좋았던 '이경응'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철종'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사대부와 백성들로부터 

 

'강화도령', '바보 왕', '허수아비 왕' 등으로 기억되곤 하는데요. 

 

강화도령
천자문 (출처 wikipedia)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에서 태어나 4세에 천자문을 배웠고, 통감과 소학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완전 글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5년 정도의 강화도 생활로 공부와 멀어졌었고,

 

즉위한 19세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던 것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즉위 당시 이미 19세였으며 어릴 때 공부 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즉위 3년 후 부터는 친정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농사를 지으며 직접 겪은 백성들을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위한 구휼이나, 여러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안동김씨 세력에 의해 무산되고 맙니다.

 

철종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삼정의 문란을 막을 수 없었고, 백성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1862년 진주를 시작으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1860년에는 최제우가 '동학'을 설립하여 더욱더 혼란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철종'은 이런 세도정치로 인한 무력감과 허탈감에 '술과 색()'에 빠지게 됩니다.

 

농사를 지으며 튼튼했던 몸은 점점 망가지게 되어 186333세의 나이로 승하하게 됩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이원범이 왕이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철종'이 되면서 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를 얻었죠,

 

하지만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조선 후기'꼭두각시 왕'이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마음고생만 한 것 같습니다. 

 

야사에서 '철종'의 외숙부인 '염씨'강화도에서 하인으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염씨는 왕의 외숙부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지만 

 

안동 김씨 세력이 무서워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네요

.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철종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농부에서 왕이 되었지만, 

 

권력에 휘둘려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철종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농부에서 왕이되어 백성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철종'이 

 

세도정치가 아닌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으면  

 

백성들의 삶이 더 윤택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개똥이라 불리던 왕이 있었다?

조선 왕들의 본명(휘)은?

조선왕조 '군(君)'에 대해

조선왕조 조와 종의 차이

세계의 국가는 몇개일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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